잡설 산책, 저자 김연태(金年泰)

6월이 되니, 빨간 장미가 동네 울타리를 타고 온통 만발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빨갛게 물드는 것 같다. 장미는 자연 상태에서 보통 흰색, 노란색, 핑크색, 그리고 빨간색의 꽃이 피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흑장미는 검붉은색을 말하며 순 검은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꽃이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을 갖는 것은 나비와 벌을 유인하기 위한 건데 굳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검은색으로의 진화는 필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빨간 장미는 워낙 그 모양이 예쁘고 향기가 좋다보니 귀한 사람에게 선물로 자주 쓰인다. 꽃다발로 또는 꽃바구니로 가득 채우 전달할 때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깊은 감동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선물로 전달하는 장미는 한송이, 스무송이, 마흔 네 송이, 백 송이 단위로 선물한다는 것 같다. 한 송이는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그대에게, 스무 송이는 성년의 날 비로소 어른이 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해, 마흔 네 송이는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뜻을 담아 상대에게 전한다. 마흔 네송이에는 약간 음험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오늘은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 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통은 간편하게 한 송이의 빨간 장미를 전달하게 되지만 막상 한송이만으론 받는 사람이 못내 서운해 보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능하면 많은 장미를 전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여는데 더 좋은 시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빨간 장미의 꽃말은 욕망ㆍ열정ㆍ기쁨ㆍ아름다움ㆍ절정이라고 한다. 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꽃말까지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꽃이지만, 그 아름다움의 뒤에는 가시가 있어 연약하고 만만한 꽃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장미와 가시'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상징과 함축된 많은 관념들이 있고 꽃과 관계된 뒷이야기도 참 많다. 우리가 잘 아는 시인 '라이너 마리어 릴케'가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만한 유명한 일화이다.

전해오는 빨간 장미 이야기가 있다. 2차 대전 때 전쟁에 나간 공군장교와 어느 여인이 펜팔로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비록 편지를 통한 대화였으나 깊은 신뢰가 쌓이며 사랑하게 되어 만날 약속을 하게 된다. 마침 공군장교가 휴가를 나오게 되어 그들은 처음으로 대면을 하게 되는데,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이라 약속한 시간에 그 장소로 여자가 빨간 장미 다발을 들고 나타나기로 하였다. 오랫동안 서신을 통한 대화로 깊은 믿음과 사랑이 쌓인 그 여인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공군장교의 앞에 드디어 빨간 장미를 든 여인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남자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추한 모습의 여인이었다. 그냥 모른 체하고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고, 잠시 그러한 망설임과 갈등으로 고민했지만 일단 굳게 한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기에 공군장교는 그 여인에게로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여인은  "나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데 저 뒤의 여자가 나더러 이 빨간 장미 다발을 들고 당신 앞을 지나가 달라는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라며 뒤에 있는 여인을 가리켰다.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 서있는 여자는 빨간 장미를 닮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를 향해 반갑게 달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당신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이에게 부탁했고 남자가 얼마나 진실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다. 

요즘 담장 가득 핀 빨간 넝쿨장미를 볼 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 나 파식 웃게 된다.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을 테지, 열정과 아름다움과 기쁨의 꽃, 빨간 장미가 맺어놓은 인연이니까!

 

- 김연태(한국건설기술인협회 회장) -

저작권자 © 스포츠 피플 타임즈(Sports Peopl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