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설 산책, 저자 김연태(金年泰)

나는 요즘, '잘못된 결정보다 하지 않은 결정이 낫다'는 어느 유명인의 말에 공감이 간다. 서둘러 결정을 하고 보면 꼭 뭔가 잘못된 듯 개운치 않은 뒷맛이 따른다. 학창시절, 친구들 간에 유행했었던 사인지(설문지)를 직므도 가끔 들여다보며 혼자 웃을 때가 있다. 그 설문에는 당신이 본 나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묻고 있는데 한 친구가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똑같이 '속단'이라는 답을 해주어 큰 충격과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삼국지에 보면 지략가인 조조가 정권을 잡기 전, 초급 장교시절의 애기가 나온다. 어려웠던 초급 장교시절, 길을 지나다가 마침 부친과 가까운 어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무척 반갑게 환대를 하며 편히 쉬었다 가기를 권한다. 피곤해 누워 있던 조조가 가만히 들으니 부엌에서 칼을 갈면서 '한번에 찔러 죽여야 하는데' 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들은 조조는 자기를 죽이려는 줄 알고 부엌으로 가서 부친의 친구를 죽이고 달아나다 보니, 조조에게 잡아주기 위해 그 가족이 돼지를 사 가지고 돌아오고 있었다. 순간 조조는 자신의 속단을 후회하지만 기왕 벌어진 일이나 후환을 없애기 위해 그 가족마저 모두 죽이고 만다.

오래 전(안경을 쓰지 않고도 잘 보였을 때),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옆자리에 앉은 재일동포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건설 관련 일을 한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은 큰 뼈대는 그런대로 하는 것 같은데, 세부적인 마무리가 아주 형편없다며 혹평을 했다. 그 혹평으로 슬그머니 부아가 나던 참에 음료가 제공되었다. 그는 커피를 선택했는데 작은 봉지에 들어 있던 설탕을 넣지 않고 후추를 넣었다. 당연히 설탕은 Sugar이며, 후추는 Pepper인데 그는 그 영어를 구분 못하는 듯했다. 아니 그 간단한 영어로 되어 있는 설탕과 후추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한국인을 그리 욕하다니 하며 속으로 고소해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깨닫고 보니 그것은 나의 '속단'이었던 것 가다. 지금 내가 그 설탕과 후추를 구분하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설탕과 후추라고 써놓은 그런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그 때 그는 영어를 모르는 것이 아니고 나처럼 돋보기를 써야만 구분이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그 때의 속단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며,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는 그 때의 속단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 김연태(한국건설기술인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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