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초(一草) 박 삼 옥(朴 三 玉)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졸업· 국민대학교 산업재산권 대학원 법학석사
1988년 서울패럴림픽조직위 홍보과장, 사업부장 · 서울패럴림픽대회 사업지원처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상무이사 · (주)한국스포츠TV(현 SBS 스포츠) 대표이사 사장
창원경륜공단 이사장(1~3대) · (사)한국자전거문화포럼 회장
현재. 수필가 · (사)국제문인협회 이사 · 국제문예 수필부문 등단
체육포장 · 지방공기업 경영대상 ·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제9181호)
저서 : 자전거‘살림길’이야기5권 · 쪽빛자전거! 대한민국! GO! GO! GO! 등

내 맘에 새긴 ‘어둠과 새벽’ 이야기들!

박 삼 옥

❶어둠은 새벽이 밝아야 비로소 걷힌다

우리말에 ‘어두운 상태’ 그러니까 ‘어둡고 캄캄함’을 어둠이라 하고, ‘날이 밝을 녘’ 또는 ‘먼동이 트기 전’을 새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둠과 새벽’을 또렷하게 느껴보려면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을까. 바로 바다에서 해돋이 즉 일출(日出)을 지켜보면 된다. 나는 어둠과 새벽을 동시에 함께,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둠이 새벽으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을, 동해바다의 해돋이를 통해 절절하게 느껴본 적이 있다. 지금 새삼 돌이키니 벌써 두 해 전 어느 가을 날(2019.10.11.)로 기억된다. 나는 아내와 함께 동해안 가을 풍광을 며칠 쭉 둘러보려고 승용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그래서 첫날은 먼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內雪嶽)에 자리한 백담사(百潭寺)와 영시암(永矢庵)을 차례로 들리었다. 그리고 미시령 터널을 거쳐 속초시로 가서 바다와 바로 맞닿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어서 둘째 날 꼭두새벽에 우리 내외는 해돋이를 보기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그리고 5분 남짓 어둠속 길을 곧장 걸어가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신령(神靈)스런 거문고(琴) 소리처럼 들리는 정자인 영금정(靈琴亭)에 다다랐다. 마침 거기엔 우리 보다 앞서 온 대여섯 명의 젊은 남녀가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파도 소리가 고요를 깨는 가운데 동쪽을 뚫어지게 자세히 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살아오면서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거나 초조하게 기다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처럼 캄캄한 어둠 속 바닷가에서 ‘여명(黎明)’ 그러니까 ‘어둑새벽’ 또는 ‘갓밝이’라고도 부르는,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겠다는 오롯한 생각으로 기다려 본적은 결코 없었다. 그만큼 그 순간의 내 마음은 정말 갸륵하였다. 흔히 명승풍광도 오랫동안 공덕(功德)을 쌓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렵게 백두산에 올랐으나 안개가 끼어 천지(天池)를 볼 수가 없었다든지, 힘들게 한라산에 올랐으나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탁 트인 바다는 보지 못했다는 따위의 얘기들을 종종 듣곤 했다. 그런데 젊었을 땐 별로 대수롭잖게 여겼으나 나이가 여든 살이 가까워지니 그런 말들도 곰곰이 새겨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내외는 곧이어 멋진 해돋이 모습을 재대로 볼 수 있을 만큼 그동안 공덕을 쌓았을까. 그래서 슬그머니 그 부분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불현듯 내가 고1 여름 방학 때 홀로 동해안을 따라 무전여행(無錢旅行)을 하며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지켜보았던 해돋이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 일행들의 시야에 어느새 달라진 동녘 모습이 자연스레 들어왔다. 분명하게 어둠이 아주 얇게 사라지며 수평선이 어슴푸레 보이고, 그 위로 제법 두꺼운 구름이 덮여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숨소리마저 죽여 가며 빠르게 변하는 동쪽을 바라본다. 이제는 제법 사방의 둘레가 점점 밝아지며 구름사이로 엷고 한 가닥 붉은 빛이, 마치 크고 긴 눈썹 모양처럼 떠오르고 차츰 둥그런 불덩이가 되어 쑥쑥 솟아오른다. 

해돋이 사진=박삼옥
해돋이 사진=박삼옥

이에 좇아 그동안 줄곧 어둠 속에서 파도소리만 잔뜩 내지르던 앞 바다는, 잿빛으로 엄청 드넓은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가까이에 설악산(雪嶽山)의 연봉(連峰)들도 웅자(雄姿)를 뽐내고 있다. 그 날 속초 영금정에서 바라본 해돋이는 그 모습 자체도 가슴이 뭉클하였지만, 그보다도 먼동이 트며 서서히 어둠이 사라지고 새벽이 밝아오는 과정이 가슴에 퍽이나 와 닿았다. 그렇다! “어둠은 새벽이 밝아야 비로소 걷힌다”는 자연의 섭리를 나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바로 이 제❶편은 내 마음 즉, ‘내 맘’에 깊이 새긴 첫 번째 ‘어둠과 새벽’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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