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변호사자격을 갖춘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우크라이나의 제6대 대통령

유뷰브 캡쳐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뷰브 캡쳐

(스포츠피플타임즈=최봉혁 기자)

지난달 2월 24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를 기습 공격하며 전쟁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의 도시는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고 군사시설 부터 발전소 병원 방송국 등이 공격을 받으며 많은 사상자 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정상들은 푸틴을 현대판 히틀러 라며 세계 대전 의 위험에 가져왔다 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 그런 가운데 코미디언 출신에 볼로디미르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주목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다양한 SNS, 외신을 종합해 취재를 했다.

우크라이나의 변호사자격을 갖춘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으로, 우크라이나의 제6대 대통령이다.

1978년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Кривий Ріг)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소련군 소속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었다.

1947년생 전기공학자인 아버지 올렉산드르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경제 연구소에서 사이버 네트워크 및 컴퓨터 하드웨어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그의 어머니인 림마 젤렌스카도 공학자이다.

아버지가 몽골 에르데네트에서 20년간 근무하게 되자 아버지를 따라 몽골에서 4년을 살다가 어머니에게 건강 문제가 생겨 우크라이나로 귀국했다. 

10대 시절에는 역도 , 레슬링 , 사교댄스를 배우기도 했고 학교 앙상블의 기타리스트로 있기도 했다.

16세 때 이스라엘에서 공부하고자 토플 시험을 보고 자격을 갖추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떠나지 못했다. 이후 키이우 국립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를 취득했지만 법조인이 되지는 않았다.

코미디언을 꿈꾸었던 그는 17세 때 처음으로 코미디 경연 프로그램으로 TV에 등장했으며, 1997년 코미디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는 신예 코미디언이 됐다. 

이후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아갔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판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하며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러시아, 벨라루스, 몰도바 등에서도 어느정도 이름값을 날리게 됐다.

그러던 2003년 9월 27살이 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는 소꿉 친구 였던 올레 나 키아 슈퍼와 8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고 1남 1녀의 자녀를얻게 된다

8년 동안 사귀던 당시 원래 나는 남자친구였던 벌로 두 미르를 따라 자주 코미디 팀의 일을 도와 주기도 했는데 그러다 나중엔 본격적으로 투매 작가가 되어 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고 말했다 

한편 '크바르탈 95'팀을 만들어 KVN TV 코미디쇼 러시아 방송국에서 활동했으며, '크바르탈 95'팀 는 어느새 번듯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로 성장하여 우크라이나 의 유료 방식 우진 원플러스 원 티비나 인테르 tv 와도 계약을 맺을 정도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면서 2005년 잉크 바레타 리라는 쇼프로그램 까지 성공시키며 블라디미르는 우크라이나 의 국민 mc 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2006년엔 우크라이나 판 텐스 위드 스타일 출연의 그야말로 대세 연예인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런가하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인테르 tv 의 이사 겸 총 프로듀서로 활동 영역까지 높여 가게 돼 한마디로 코미디언으로 시작해 mc 배우 기획자 각본 제작자 까지 못하는게 없는 다방면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볼로디미르젤렌스키가 코미디언으로 배우겸 제작자로 아주 잘 나가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정치를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운명을 바꿔버린 계기가 생겼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된 TV 시리즈 '국민의 종'을 통해 찾아왔다. 직접 주연 및 연출을 맡았던 이 정치풍자 드라마에서 젤렌스키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에서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인 바실 페트로비치 홀로보로드코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부패한 우크라이나 정치권을 맹렬히 비난했고, 이 모습을 몰래 녹화한 학생이 동영상을 SNS(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인기가 치솟게 된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국정 운영을 하면서 좌충우돌을 겪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시트콤이 평균 40 에서 50% 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고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그야말로 대 히트를 친 것이다

이로 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다시 한번 국민적인 큰 인기를 얻게 됐다

그러면서 종종 "혹시 진짜로 대통령이 될 마음은 없냐" 라는 질문을 받게 됐다

물론 그때마다 그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던 2018년 3월 국민의 종 출연진들이 시트콤 속 정당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 국민의 종이라는 신당을 실제로 창당 하게 된다.

심지어 당의 로고 역시 시트콤 속 당의 로고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3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에는 드디어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그러자 이어진 여론조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가 현직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 나 총리를 지낸 율리아 티모셴코 등 다른 쟁쟁한 후보들을

따돌리고 줄곧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우크라이나 의 국민들은 기존의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의 신물이 나 있었는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 모두가 비리 탈세 극우외국 등으로 엉망진창 이었다 고 한다

이런 후보들 사이에서 아직 정치나 부패의 때가 묻지 않은 블라디미르 는 그야말로 세상을 변화시켜 줄 지도 모를 참신한 얼굴이었다 

실제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는 시트콤의 주인공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각종 개혁공약들을 내놓았다 

부패 세력을뿌리 뽑고 부동산시장을 투명하게만들고 각종 세제 개편을 단행했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 돈 바스 지역의 분쟁해결 해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언하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9년 3월 31일 드디어 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다 

이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는 1차 투표에서 30.2 4% 를 2차 결선 투표에서 70 3.2% 를 기록하면서 2위인 포로셴코 전 대통령을 50% 가까운 큰 표차로 압승했다

이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의 나이는 마흔 두살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다

블로드 미르는 의회를 해산 시켜 버리고 내각 총사퇴 를 요청한 뒤 바로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후 열린 조기 총선에서 국민의 좋은 대 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는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새로운 대통령으로 마음껏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집권 초기 그는 농지 시장을 개방하고 디지털 서비스를 확대하고 도로도 대규모로 확충하는 등 나름의 정책들을펼쳤다 하지만 현실은 시트콤과는 많이 달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는 돈바스 지역의 내전을 끝내겠다 고 약속해지만 내전을 쉽게 끝나지 않았고 부패 척결에 도  진전이 없었다 

돈바스 전쟁은 수렁으로 들어가 한 발자국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은 우크라이나 동쪽 지역인 돈바스를 놓고 한없는 평행선을 달렸다.

우크라이나는 우리 땅이니 나가라는 입장이었고, 러시아는 그쪽 주민이 원하니 독립시키라고 주장했다.

2022 년 2월 24일 새벽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를 침공 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러시아가 전쟁을 하는 표면상의 이유로는 우크라이나가 약속을 어기고 나토 에 가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토는 소련에 대항하여 1949년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만든 군사동맹 기구이다

이에 맞선 소련과 동구권의 군사동맹 인 바로잡아 조약기구 는 소련 해체와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한다

나토의 원래 목적이 소련을 대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나토 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 입장에선 나토 를 앞세운 미국의 군사 블록이 러시아 바로 코앞에 들어 앉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기를 쓰고 이를 반대 하며 전쟁까지 벌이게 됐다 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두 나라 사이엔 많은 정치적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중 하나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가 공약으로 도 내놓은 돈 바스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가장 동쪽에 있는 육안 스크 주와 도네츠크 2일 때 돈 바스 지역은 러시아와 딱 붙어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 돈 바스 지역을 포함한 동부 일 때가 러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은 적도 있어서 이 지역엔 러시아 사람들도 많고 러시아의 문화나 풍속도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2014년 02월 우크라이나의 친 루시아 성향 의 정부가 물러나고 서방과 친한 정부가 들어서자 우크라이나 남부 있는 크림 반도에 선 시위가 일어났다

크림 반도는 옛 소련시절 러시아의 땅이었다 가 소련이 해체된 이후 우크라이나에 편입된 땅 이었는데 친 서방 성향 의 정부가 들어서면 자신들을 더욱 차별 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러시아로 기 속 시켜 달라 는 내용으로 집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크림 반도 의 절반 이상은 러시아 사람이다

당시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덜컥 크림 반도 의 병력을 투입하여 주민투표를 거쳐 오프라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크림 반도를 러시아로 합병 시켰다.

그러자 2014년 5월 돈버스지역의 주민들도 오프라인에서 독립을 하겠다고 국민 투표를 실시 무려 90% 의 지지를 얻으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 분리주의를 제창을 선포하게 된다

물론 일련의 이런 혁명이나 시위들이 순수하게 시민들의 의지에 의해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시작된 것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다

어쨌든 우크라이나 정부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 분리주의 자들을 반군으로 규정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돈바스 지역에서 반군을 상대로 내전을 벌여 오고 있던 상황 이었다

2014년부터 돈바스 지역에서 시작된 내전은 민간인을 포함해 만 오천 명이 숨지게 하고 4만여 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러시아로 피난길에 오르게 만들었다

돈바스 지역 내전이 지속되자 유럽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두 번의 종전 협정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이 민스크 협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2012년 2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이 두 나라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승인까지 받으려고 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크림 반도를 눈뜨고 빼앗긴 전력이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우크라이나 도 통째로 삼켜 지진 않을까? 걱정돼 나토라도 가입해 보호를 받고자 했다

러시아의 진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러시아입장에서 미국을 필두로 한 나토 가 자신의 코앞까지 밀고 들어올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에게 해외 피신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는 이를 거절하며 수도 키이우 에 남아 총을 들고 우크라이나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침공하자 양복 대신 국방색 티셔츠를 입고 국민 앞에 섰다.

수도 키이우 곳곳을 누비며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필요한 건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라며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결연히 드러냈다.

키이우 시민 발레리 발리에프는 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솔직히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의 측근은 비리로 얼룩졌고, 부패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전쟁이 터진 뒤 그는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그는 영웅이다. 그가 우크라이나에 승리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는 다시 90% 가 넘는 지지율을 얻고 있다

세계 각국은 전쟁 반대를 외치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제재를 이어가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다시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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