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MLB일기-12 사람들의 눈높이와 기대치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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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MLB일기-12 사람들의 눈높이와 기대치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
  • 스포츠 피플 타임즈(Sports people times)
  • 승인 2019.09.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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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MLB일기-12 사람들의 눈높이와 기대치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
2019. 9. 17 .오후 3시 33
(해외야구) 류현진/ 2006년 한화 이글스에서 데뷔해 7년간 에이스로 군림했다. 2013년 LA다저스에 입단하여 현재 선발 투수로 활약중이다.

류현진 MLB일기-12 사람들의 눈높이와 기대치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

<부진 탈출을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류현진. 그가 밝힌 소회>

불과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콜로라도 로키스전까지 4경기 연속 부진한 모습에 그 원인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저도 궁금했습니다. 한두 경기도 아니고 계속되는 부진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니까요.

두 차례의 불펜피칭을 하기 전 저와 허니컷 코치님은 구단의 데이터 분석팀에서 건네준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가장 급한 건 제구였습니다. 왜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그 원인을 찾고 싶었습니다. 영상 분석팀의 도움으로 투구폼을 비교해봤습니다. 좋은 모습을 보였을 때와 좋지 않았을 때의 투구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해서 반복 시청했습니다.

먼저 투구폼의 밸런스가 맞지 않더군요. 분명 비슷한 투구폼인데 투구 동작의 타이밍이 빨라지면서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습니다. 그래서 볼도 날렸던 것이고요. 오른팔이 빨리 열리는 부분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현대 야구는 데이터를 통해 상태팀 투수의 세밀한 약점까지 파악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구종의 딜리버리에 차이가 보인다면 타자들은 금세 눈치 챌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동안 제 장점은 일정한 투구폼으로 다양한 구종을 던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타자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질 때 팔 각도가 살짝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주무기인 체인지업이 좋지 않은 코스로 들어간 겁니다.날카롭게 떨어지지 못한 체인지업은 우타자한테 치기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두 차례의 불펜피칭을 통해 수정 보완해 나갔습니다. 중심 이동에도 변화를 줬고, 오른팔이 빨리 열리는 걸 의식해 일부러 어깨를 막는 듯한 느낌으로 투구한 적도 있습니다. 솔직히 불펜피칭을 했다고 해서 모든 걸 해결한 건 아닙니다. 두 번째 불펜피칭 때는 오히려 의도했던 모습이 나오지 않아 살짝 당황했습니다. 그런 부분은 캐치볼하면서 천천히 잡아갔습니다. 경기 등판 전 불펜에서 몸을 풀 때는 투수 코치님도 쉽게 말을 꺼내지 않기 때문에 가장 좋은 건 캐치볼 할 때 투구폼을 수정하며 공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그럴 때 커쇼와 같은 투수가 캐치볼 파트너가 된다면 큰 도움이 되겠죠.

저는 연패 중이거나 연승 중일 때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는 편입니다. 인터뷰 때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내 것만 잘하자’라고 마음을 다잡는 게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4경기 연속 부진을 거듭할 때는 위에서 언급한 투구폼 수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했던 건 정신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시즌을 보내고 있고,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가운데 한두 번도 아니고 잇달아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스스로 제 자신을 믿지 못하겠더라고요.

하루는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올시즌 앞두고 제가 목표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 본 겁니다. 그때 제 목표에는 ‘사이영상’이니 ‘평균자책점 1위’, 그리고 ‘올스타 출전’과 같은 단어는 리스트에 없었습니다. ‘무조건 건강한 몸으로 정규 시즌을 소화하면서 팀 성적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성적이 가파른 상승세를 달렸고, 하다 보니 메이저리그 전체 ERA 1위 선수가 됐으며 올스타전 선발 등판이라는 값진 경험도 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의 눈높이와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저도 그들의 기대치에 제 자신을 맞춰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종종 조급해 하는 모습을 노출했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타이틀을 잃을까봐 약간의 걱정이 한몫했을 지도 모릅니다.

콜로라도 로키스전 이후 한 차례 등판을 거르고 10일을 쉬면서 저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잘해왔다고, 이 정도도 잘 한 거라고, 설령 타이틀을 잃어도 충분히 잘했다고, 저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갖고 있는 걸 잃는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뉴욕 메츠전을 앞두고 비로소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건 10일 휴식이 준 보너스였습니다.

앞으로 두 차례 정도의 정규시즌 등판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또다시 어려움을 반복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경기 결과가 좋지 않아도 제가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경기 내용이라면 받아들일 것입니다. 지난 4경기의 부진이 성적 하락으로 이어졌지만 제 야구 인생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겪을 때는 큰 아픔인데 겪고 나면 삶의 교훈이 된다는 걸 다시 배웠으니까요

<별다른 욕심이 없어 보이는 류현진도 실제 기대와 욕심이 존재한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의 류현진은 불가능했을 터.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기록과 타이틀이 어쩌면 자신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였을 거란 생각에 그는 뉴욕 메츠전을 앞두고 마음을 내려 놓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류현진 일기에 그의 인생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사진=다저스 포토블로그)>

*이 일기는 류현진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기사제공 류현진 MLB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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