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가작-노민규 요미와 경주 - (산문, 지체, 시각, 동화) (그림 = 강선아 비누방울)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가작-노민규 요미와 경주 - (산문, 지체, 시각, 동화) (그림 = 강선아 비누방울)

 

 

요미와 경주

노민규

나는 엄마가 밥을 먹여 준다. 이런 모습을 아빠는 싫어했다.

“여보 언제까지 그렇게 먹여 줄 거야? 민재가 지금 몇 살인데.”

아빠의 말에도 엄마는 밥을 계속 먹여주었다. 아빠는 밥을 먹다 말고 출근을 했다. 엄마는 물을 세게 틀어 놓고 설거지를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도 안다. 사실 아빠는 엄마가 아니라 내게 화가 난 것이다. 열 살짜리가 네 살짜리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리광이 시작된 것은 일 년 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두 다리를 다쳤다. 수술 두 번 하고도 걷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일 년은 열심히 재활치료를 해야 걸을 수 있다고 했다. 답답했다.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고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목발을 짚고 열심히 걷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몇 걸음도 못 가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힘들고 다리도 아팠다. 좋아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모두 3학년에 올라갔다. 모든 것이 짜증 나고, 귀찮았다. 그때부터였다. 목발은 방구석에 세워 놓고 엄마에게 밥 떠먹여 달라, 비싼 장난감 사 달라, 업어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출근하면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상체는 뚱뚱한데 다리는 가늘게 말랐다.

초인종이 울렸다. 아빠 퇴근 시간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여보. 웬 강아지예요?”

‘끙끙’거리는 소리에 나는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아빠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흰 털이 '뽀송뽀송'한 귀여운 푸들이었다.

“안아 봐도 돼요?”

어느새 나는 방에서 나와 있었다. 아빠는 강아지를 내게 안겨주었다. 강아지는 내 손가락을 혀로 핥았다.

“당신도 잘 알지? 내 친구 동규? 그 친구네 푸들이 삼 주 전에 새끼 다섯 마리를 낳는데 다 분양했고 한 마리는 내게 준다는 거야. 난 귀찮아서 싫다고 했지. 그럼 가족이 외국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만 봐달라더군. 그래서 일주일 동안 봐주기로 했어.”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엄마를 쳐다보았어요.

“여보 우리가 키워요! 민재도 심심치 않고 좋을 것 같아요.”

아빠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민재야!. 이 강아지 키우고 싶니?”

아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어쩐다. 나는 집에서 동물을를 키우는 것이 싫고, 민재는 좋아하고,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이 강아지와 경주를 해서 이기면 기르게 해 줄게. 동시에 출발해서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거야. 해볼래?”

나는 아빠의 제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고 전 같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리를 다쳤는데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때 엄마가 말했다.

“ 강아지가 민재를 닮아서 참 귀엽네! 아직 어려서 잘 걷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나는 강아지를 다시 봤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내가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자 뒤뚱뒤뚱 걸었다. 이 정도이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경기는 이번 주 일요일에 하자.”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강아지를 안아 쓰다듬었다.

“우리 강아지 이름을 지어주자! 어떤 이름이 좋을까?”

엄마의 말에 모두 생각에 잠겼다... 아빠는 ‘해피’ 엄마는 ‘몽실’ 나는 귀요미를 줄여서‘요미’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럼 민재하고 제일 많이 지내니까 이름은‘요미’로 하자.”

아빠가 내 의견에 찬성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요미가 '끙끙’거렸다. 엄마가 요미의 소지품에서 분유병을 찾아서 내게 주었다. 분유병을 입에 대어 주자 힘차게 빨았다.

“엄마 이거 좀 봐요. 정말 신기해요”

“무척 배가 고팠나 보다. 우리 민재도 이렇게 귀여웠단다.”

나도 요미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화요일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요미에게 갔다.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요미 밥은 내가 ‘먹이겠다’고 했다. 얼마나 잘 먹는지 빈 병을 당기면 요미의 몸이 끌려 왔다. 분유를 먹고 잠든 모습을 한참 보다가 나도 잠이 들었다.

'끙끙'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요미였다. 또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엄마는 경주 연습을 요미 분유 먹는 시간에 하자고 했다. 요미가 분유병을 보고 가면 그때 내가 같이 출발해서 경주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신호에 맞추어 출발했다. 요미는 분유병을 향해 코를 실룩거리며 뒤뚱뒤뚱 걸어갔다. 나도 목발을 짚고 앞으로 갔다. 경주는 나의 압승으로 끝났다.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는 요미는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빠와의 내기는 이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고 이후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인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엄마가 요미와 함께 목욕을 시켜주었다. 목욕을 마치자 요미는 또 잠이 들었다.

“엄마. 요미 또 자요. 아픈가 봐요?”

“아기 때는 원래 많이 자는 거야. 자는 동안 무럭무럭 자란단다. 민재도 그랬는걸.”

아픈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저녁 식사 때 아빠가 물었다.

“민재야. 경주 준비는 잘하고 있지?”

나는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오늘은 너무 피곤했는지 요미도 나도 밥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수요일 아침. 늦잠을 잤다. 나는 연습을 할 생각이 없었다. 경주는 내가 이길 것이 뻔했다. 엄마도 연습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종일 요미와 장난을 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요미를 안아보니 어제보다 무거웠다. 분유도 어제보다 더 먹었다.

“우리 요미 꿀돼지 되겠네.”

요미는 놀다가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하루 다섯 번씩 분유를 먹었다. 분유를 챙겨 먹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식사 때마다 나에게 밥 먹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죄송했다.

“민재야 귀엽지? 우리 민재도 어렸을 때 이렇게 귀여웠단다.”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 식사 때에 나는 엄마에게 수저를 달라고 해서 직접 밥을 먹었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빠가 또 물었다.

“민재야. 경주 준비는 잘하고 있지?”

엄마가 말했다.

“그럼요. 민재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하는데요. 이젠 잘 걸어요.”

“경주는 이번 주, 일요일 아침에 하자. 그날 저녁에 요미를 돌려줘야 할지 모르니까.”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질문이 귀찮기도 했고 자신이 있었다.

목요일 아침. 늦잠을 잤다. 나는 요미를 찾았다.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요미 어디 있어요?”

“글쎄. 조금 전까지 네 머리맡에서 자고 있었는데”

“요미! 요미!”

내가 부르는 소리에 책상 밑에서 요미가 걸어 나왔다. 깜짝 놀랐다.

“요미! 너 이제 잘 걸을 수 있니?”

엄마도 매우 놀란 것 같았다. 걸음 속도도 어제보다 빨랐다. 나는 아침을 허겁지겁 먹고 엄마에게 연습을 재촉했다. 엄마도 서둘러 설거지를 했다. 우리는 연습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했다. 다행이었다. 요미의 걸음 속도는 아직은 나보다 느렸다.

“우리 민재 이제는 잘 걷네. 조금만 더 연습하면 목발 없이도 걷겠는데!”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내가 걷는 것이 많이 좋아졌다. 얼마 전까지 몇 걸음 걸으면 주저앉았었는데 지금은 열 걸음은 쉬지 않고 갈 수 있다.

금요일 아침. 얼굴이 차가웠다. 눈을 떠보니 요미가 얼굴을 핥고 있었다. 몸이 ‘으실으실’하고 머리에는 열이 났다. 병원에 갔더니 몸살감기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식사하고 약을 먹자 졸음이 몰려왔다. 엄마가 오늘은 푹 쉬자고 했다.

“연습해야 하는데. 연습해야 하는데”

“요미도 쉬어야지. 엄마가 콩이 연습 못 하게 할게.”

엄마가 이불을 덮어주자 나는 곧 잠이 들었다. 퇴근한 아빠가 내 이마에 손을 얹고 한참을 보았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잠을 푹 자서인지 몸이 가벼웠다. 요미는 아직 자고 있었다.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강아지는 생후 삼 주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한다고 했다. 걱정되었다. 내 마음도 모르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요미가 미웠다. 요미는 일어나자마자 나를 ‘말똥말똥’ 쳐다봤다.

"이 바보야 너랑 같이 살고 싶단 말이야“

아침을 먹고 엄마와 함께 경주 연습을 했다. 요미는 이제 내 뒤를 바싹 따라왔다. 요미와 씻으며 투덜댔다.

"요미! 너 이렇게 잘 걸으면 어떡해? 너도 나랑 같이 있고 싶지? 그러면 천천히 좀 걸어 이 바보야“

요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을 털었다.

"으! 요미 너 정말. 귀여운 녀석“

저녁을 먹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요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엄지발가락이 간지러웠다. 발을 흔들었다. 그래도 계속 간지러웠다. 눈떠보니 요미가 핥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 아빠는 경주 준비를 했다. 마당에 줄로 출발선과 결승선을 표시했다. 엄마는 출발선에서 요미를 잡고 있었고 아빠는 결승선에서 분유병을 들고 있었다. 나와 요미가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준비!”

"삐!"

아빠의 출발 신호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출발은 내가 빨랐다. 나는 목발을 짚고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힘이 쭉쭉 빠져나갔다. 뒤에선 엄마가 나를 응원하고 앞에서는 아빠가 분유병을 흔들며 요미를 불렀다.

“민재 이겨라! 민재 이겨라!“

“요미 밥 먹자. 어서 와. 우쭈쭈”

절반쯤 왔을 때 옆을 보았다. 요미가 꼬리를 흔들며 내 뒤까지 바싹 쫓아왔다. 곧 따라 잡힐 것 같았다. 나는 더 힘차게 목발을 옮겼다. 숨이 턱까지 찼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앞에서 열심히 요미를 부르는 아빠가 미웠다. 나는 옆을 보았다. 요미가 나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 이 바보야! 네가 이기면 우리는 같이 못 있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느새 요미의 꼬리가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결승선이 보였다. 요미를 따라잡으려고 목발을 넓게 벌렸다. 그때였다. 목발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미 요미는 결승선 가까이 있었다.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였다. 요미가 결승선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뒤돌아 내 쪽으로 왔다.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손을 핥기 시작했다.

“ 저리 가. 저리 가.”

나는 요미를 밀어냈다. 요미는 이제 발을 핥았다. 그때 요미가 내게 말했다.

“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요!”

나는 눈물을 닦고 요미를 쳐다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요미가 말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요!”

나는 다시 목발을 잡고 힘겹게 일어섰다. 결승선을 향해 한 발 한 발 옮겼다. 요미는 내 옆을 따라왔다. 나는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빠가 내 팔을 번적 들었다. 엄마가 얼굴을 닦아 주었다. 나는 요미를 꼭 안고 울었다. 아빠. 엄마도 나를 꼭 안고 울었다.

“아빠! 죄송해요. 제가 잘못 했어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 말이 나왔다. 아빠가 말했다.

“우리 아들 참 장하다. 사랑한다.”

우리 넷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요미도 울었다.

“멍멍멍”

저작권자 © 스포츠 피플 타임즈(Sports Peopl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