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동 환경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0402444168599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코로나19의 경제적 여파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 급락과 실업률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관련 기사 : <디지털타임스> 5월 3일 자 '"올 세계경제 GDP 9조 달러 증발"')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자의 81%가 코로나19로 인한 작업장 폐쇄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바로 가기 : ILO 4월 29일 자 'ILO 모니터: COVID-19와 노동') 일자리는 없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 같은 사회 변화는 비대면(untact)을 메꿀 기술과 자동화 장비, 서비스 영역에서 새로운 노동 수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줄어드는 일자리가 10개라면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3개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저임금의 물류, 배달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관련 기사 : <한국일보> 5월 22일 자 '코로나가 던지는 섬뜩한 경고... "줄어든 일자리,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이전부터 온라인 유통과 배달 시장이 급속히 성장했고, 배송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건강권 문제가 수 차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19년 11월 6일 자 '라이더 불법 고용해 음식 배달하는 게 혁신?') 코로나19 유행은 기존의 문제들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3월 쿠팡맨의 사망 사고에 이어, 최근 쿠팡 부천물류센터 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은 물류 노동자들의 과중한 노동, 기본적인 감염예방 수칙도 따를 수 없었던 취약한 노동 환경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3월 15일 자 '쿠팡 배송노동자 새벽 근무중 사망.. "물류 너무 많았다" 증언도', <뉴스1> 5월 29일 자 ''1등의 그늘' 방역 소홀히 한 쿠팡.. 대기업이 오히려 수칙 무시') 

 

IT 기술과 스마트폰의 발전 덕분에 위탁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에게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거나 초단기 계약을 맺는 고용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플랫폼 노동' 혹은 '긱 이코노미' 같은 멋진 이름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경제, 공유경제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주목을 받기도 한다.(☞ 관련 기사 : <서울경제> 2018년 3월 18일 자 '막오른 '긱 이코노미 시대'... 기업가 정신부터 길러야') 그러나 플랫폼 노동 또는 긱 이코노미는 정규직보다는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단기)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향이 있다.(☞ 관련 기사 : <JTBC 뉴스> 5월 29일 자 ''더 싸게 더 빨리' 우선...쿠팡 비정규직 97%나 됐다') 이러한 단기계약 노동, 긱 노동은 노동자들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지난 3월 국제학술지 <공중보건>에는 이러한 질문에 단서를 줄 수 있는 미국 터프츠대학 데이비스 교수팀의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1980~90년대 제조업 분야에서 널리 쓰였던 개수 임금제도(Piece rate pay, PRP: 시간당 임금이 아니라 작업량 건당 지불하는 방식)가 오늘날 긱노동의 불안정한 임금지급 방식과 유사하다고 보고, 이런 임금제가 노동자의 주관적 건강에 미치는 장기 영향을 분석했다.(☞ 바로 가기 : A longitudinal study of piece rate and health: evidence and implications for workers in the US gig economy

 

논문은 1957년부터 1964년 사이에 출생한 노동자들을 1979년부터 2004년까지 추적한 대규모 노동자코호트조사(NLSY79) 자료에서, PRP 임금제 경험과 일이나 활동을 제약하는 건강상태경험 여부에 대해 물었던 6개 연도의 조사자료(1988년, 1989년, 1990년, 1996년, 1998년, 2000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랜덤 효과 로짓 모형을 이용하여 PRP 방식으로 임금을 받는 것의 당해 연도 건강 효과와 누적 건강 효과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조사기간 동안 전체 노동자(5만3910명)의 약 10%가 한 번 이상 PRP로 임금을 지불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다른 부문보다 제조업 분야에서 PRP가 좀 더 흔했고, PRP로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은 고정급 노동자들보다 주당 노동시간이 더 길었다. PRP 임금제 노동자들은 고정급제 노동자들에 비해 일과 활동에 제약이 되는 건강 문제가 있다고 보고한 비율이 더 높았는데, 당해 조사 연도에는 1.75배, 누적해서 보면 1.42배 높았다. 또한 저소득, 여성, 비백인 그룹이 각각 고소득, 남성, 백인 그룹에 비해 건강 제약이 더 많다고 응답했다.

 

연구팀은 젠더나 인종·직종에 대한 편견들이 임금격차를 강화한다는 이전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PRP 임금체계에서 여성이나 소수인종 노동자들은 남성이나 백인 동료 수준의 소득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따라서 직업성 손상과 사고 위험이 커지게 된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결과는 기업이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작업량에 비례하여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경우, 노동자들이 장비 보수, 휴식, 개인보호장비 착용, 의료기관 방문처럼 직업성 사고와 손상을 줄이는 일에 소홀하도록 만든다는 연구와 일맥상통한다.(☞ 바로 가기 : ILO 2018년 12월 'Piece rate pay and working conditions in the export garment sector') 

 

연구팀은 생산성을 높이려고 도입한 PRP 임금제가 노동자의 건강이나 안전을 위협하여 결근이나 성과 저하 등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총수익도 낮추게 된다고 지적했다. PRP 임금제는 기업주의 건강보험료 부담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이를 피해 나갈 방법이 있다. '우버' 같은 플랫폼 기업은 고용주라는 법적 지위를 가지지 않으려 하고, 그것이 플랫폼 기업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축이라고 해석한다. 이미 우버에 대한 여러 실증연구들은 플랫폼 노동이 사회보험이나 직업교육, 고용보장 등 노동자를 위해 지출해야 할 사용자의 비용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노동자 개인 혹은 사회에 전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쿠팡 물류노동자 감염 사례에서 보다시피 이들은 할당된 노동량을 맞추기 위해서 감염 안전 수칙을 지킬 수도, 요구할 수도 없었다. 또한 감염으로 인한 건강 손실과 노동 손실로 인한 타격도 스스로 감당하고 있다. 이익과 위험의 배분이 결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해 도입된 비대면·비접촉 생활 방식은 이제 일상의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누군가의 '사회적 거리두기' 삶이 가능하려면, 그 틈새를 메꾸는 노동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 틈새를 메꾸는 소중한 노동이 착취되지 않게 만드는 것, 모든 사람의 삶과 노동이 함께 보호받을 수 있도록 노동 환경과 사회 보장을 재구성하는 것이야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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