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산책, 저자 김연태(金年泰)

꽃을 보고 즐기기 위해 찾아다니는 것을 탐화(探花)라 하고, 그중에 특히 매화꽃을 찾아다니는 것을 탐매(探梅)라 한다. 난초·국화·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라 불리는 매화는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맨 먼저 피어난다. 눈서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위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다 보니 화형(花兄)이요, 세한(歲寒)의 군자며 눈이 내릴 대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고도 부른다.

꽃의 빛깔은 흰색과 홍색이지만 흰색 중에서도 푸른빛을 내어 옥 같은 하얀색을 띠는 것은 옥매라고도 한다. 매화는 청고(淸高)하고 창연한 고전미가 있어 가장 동약적이며, 추위 속에 꽃을 피운다 하여 대표적인 선비정신으로 시나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매화는 통상 한사(寒士)를 상징하여 차가운 눈 속의 매화를 연상하게 한다.

 

어미는 어려서 되어 설움에 울고/ 매화는 눈 속에 피어 추위에 떠네.(일지매)

원림(園林)에는 봄눈이 내렸는데/꽃은 아름답게 한꺼번에 피어나네/ 눈인지 꽃인지 분간을 못하겠더니/ 향기로 매화가 피었는지 알았네.(손조서 : 春雪)

섣달 눈 하늘 가득 내리는데/차가운 매화가 방싯 꽃을 피웠네/ 눈송이 또 송이송이/ 매화에 날아드니 꽃인지 눈인지 모르겠구나.(보우스님)

마음엔 섣달 눈이 아직 녹지 않았으니/ 누가 즐겨 사립문을 두드릴까/ 밤에 갑자기 맑은 향기 움직이니/ 매화나무 몇 가지에 꽃 핀 듯하구나.(유방선)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아 / 계림에 봄빛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영리한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모례(毛禮)의 집 매화에 먼저 꽃을 피웠네.(삼국유사 중 일연)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이육사 : 광야)

어여쁜 온갖 꽃 모두 보았고/ 안개 속 꽃다운 풀 모두 밟아보았네/ 그래도 매화는 찾은 수가 없는데/ 땅에는 눈보라만 가득하니 이를 어쩌랴(한용운 :매화)

천연한 옥색은 세속의 어두움 뛰어 넘고/ 고고한 기질은 뭇 꽃의 소란스러움에 끼어들지 않네.(퇴계 이황)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좀보소.' 꽃없는 동지섣달의 긴긴밤을 보내고 맨 처음에 피는 매화를 찾아 탐매 길을 다녀왔다. 교통편의상 예년에는 충북이원에 있는 옥매원이라는 매화농장에 자주 다녔지만 이번엔 변화를 위해 섬진강 주변을 찾았다. 통상은 매화가 가장 절정인 축제기간에 가야하겠지만 사람에 치이게 되어 이를 피하고, 매화로 많이 알려진 광양까지 가기에는 거리상으로도 부담스럽기에 전북 임실의 매화마을인 구담마을을 찾았다. 생각보다 만족스러워 원 없는 천천함으로 모처럼의 한을 풀듯 매화를 만나보지만 '회자정리'라던가, 매화를 두고 올라와야하는 아쉬움은 전주막걸리 한잔으로 달래본다. 가을에 내려가는 속도도 마찬가지지만 꽃이 올라오는 속도는 하루에 20~30킬로미터이다. 지금 서울엔 진달래, 개나리가 시작되지만 매화가 피는 섬진강가엔 매화가 먼저 지게 될 것이다.

'매화 꽃피어 온 산 가득한데/ 은자(隱者)는 빈 술잔 쥐고 웃음지네/ 술을 살 돈이 없는 거야 괜찮지만/ 다만 매화꽃 오래 가지 못할까 두렵구나.' 라며 어느 문인이 두려워했었는데, 매화를 좋아하는 나 역시 그 두려워 하는 마음의 실체를 왠지 알 것 같다.

겨우내 기다려 그리운 이와 함께 보고 싶어한 마당의 매화가 어느새 다지려할 때의 절박했던 마음을 기억하며, 이 겨울을 나고 새로 만날 고고한 자태의 매화를 기다려 본다.

                                                                                                             

   - 김연태(한국건설기술인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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