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산책, 저자 김연태(金年泰)

봄이 되면 가장 청초하게 피어나는 꽃 목련, 목련은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부터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다. 목련과에 속하는 나무들은 모두 크고 탐스런 꽃을 피우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백목련과 자목련이다. 150여 종이나 될 만큼 종류가 많아서인지 선인들이 붙여 놓은 이름도 퍽이나 많다.

우리의 정원에 많이 심기 때문에 방목(房木)이라 불리기도, 꽃봉오리의 모습이 붓을 연상시킨다하여 목필(木筆)로도, 한 나무 꽃송이가 달리면 마치 옥돌로 된 산을 보는 것 같아 '망여옥산(望如玉山)'이라고도, 향기가 좋다보니 꽃은 옥이여, 향기는 난초라는 뜻으로 '옥란(玉蘭)'이라고도 부른다. 또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고 '옥수', 난초 같은 나무라고 '목란', 나무에 피는 크고 탐스런 연꽃이라 하여 '목련'이라고 불렀다. 뿐만 아니라 한방 약재로도 쓰이는데, 약간 매운 맛이 난다고 '신', 또는 '신이화(辛夷花)'라고도 부르는 목련은 정말 수많은 이름이 붙은 꽃이다.

이토록 많은 이름을 가진 꽃에게, 나는 '무상화'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가장 청초하게 피어나, 한때를 누리지만 꽃잎을 접을 땐 너무 빠르게 칙칙한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에서 우리네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인생무상의 가르침을 너무도 적절하게 보여주는 꽃이 아닌가 싶다. '봄꽃도 한때요, 열흘 붉은 꽃 없다, 떨어진 꽃은 나뭇가지에 다시 올라 피지 못한다, 봄이 온다고 죽은 나무에 꽃이 필까, 꽃도 시들면 오던 나비도 오지 않는다, 매화도 한철이요 국화도 한철이다.' 등과 같은 수많은 표현이 있지만 말이다.

"세월아 네월아, 오고 가지를 말아라, 꽃 같은 이내 청춘 다 늙어 가누나." 청춘가에서 표현하듯 이 꽃을 볼 떄마다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생각을 가다듬으며 지금 하고 싶은일, 지금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 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심히 보면 목련의 꽃봉오리는 모두 북쪽을 향해 굽어 있다. 그래서 북향화 라고도 부른다. 이런 현상을 배경으로 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천상의 북쪽에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 있었는데, 그는 몹시 난폭한 신이었다. 멀리서 이 신이 보이면 모든 이가 피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어린 여자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북쪽 바다 신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위협할 정도로 난폭한 명성이 자자했다. 마침 남쪽 나라에 있는 어느 공주도 어려서부터 이 말을 자주 들으며 자라다보니 자신의 배필은 북쪽의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공주가 성장해 그 북쪽 신에게 출가하겠다고 밝히자, 황당한 부모들은 그의 황포한 명성을 상기시켜주며 모든 만물들이 피하는 신이니 내 딸은 그런 생각은 품지도 말라고 단호하게 명을 내린다. 그 얘길 들은 공주는 그 북쪽 신이 너무나 불쌍해져서 자신이 출가해 그를 보호하리라 다짐하고, 그에 대한 연민으로 궁을 나와 북쪽으로 향한다. 오랫동안 걸어서 북쪽에 당도하고 나서야 그가 이미 결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너무도 낙심한 나머지 공주는 북쪽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죽게 되고 그가 죽은 자리에서 백목련이 피어났다. 그가 그렇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다신의 아내는 애처러운 마음에 자신도 덩달아 물에 빠져 죽었고 그가 죽은 자리엔 자목련 꽃이 피어났다. 북쪽의 바다 신을 사모한 백목련과 자목련 꽃송이가 모두 북쪽을 바라보는 이유라고 전해진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저 전해져 오는 전설일 뿐이고, 목련이 북쪽을 향해 피는 까닭은 남쪽의 햇살이 강하기 때문이다. 남쪽에 더 넓게 형성되는 나무의 나이테와 마찬가지로 꽃봉오리의 남쪽부분이 햇볕을 더 받다보니 더 길게 꽃잎이 자라 짧게 자란 북쪽으로 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공주와 바다신의 부인이 죽은 시차 때문인지 언제나 백목련이 먼저 피어나서 봄을 맞기에 백목련을 '영춘화(迎春花)'라고도 부른다. 물론 영춘화라는 뜻이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만큼, 그렇게 불리는 꽃은 많다. 개나리, 황매화 등도 영춘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꽃들이다.

이 아름다운 꽃은 예전에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는지 옛 문헌이 시조나 한시에도 잘 보이지 않으며, 또한 꽃으로 담아먹는 술인 두견주, 도화주, 국화주, 개나리주, 매화주, 연화주, 매괴주(해당화 열매), 송화주 등에서도 이름이 없으며, 진달래전, 장미전, 국화전 등 화전의 재료로도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오죽하면 다산선생이 시작활동과 우정을 교환하기 위해 결성한 모임인 죽란시의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번 모인다, 한 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번 모인다, 연꽃을 구경하러 한번 모인다, 국화 꽃이 피면 한번 모인다,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한번 모인다, 세모에 화분에 매화가 피면 한번 모인다." 라고 규정해 놓은 모임 날짜에도 그의 이름을 올려놓지 못하고 있으며, 아래 4월의 노래를 보면 이 청초하고 아름다운 꽃 목련은 비교적 근현대에 들어와 우리에게 가까워졌던 것 같다.

 

  - 4월의 노래, 박목월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히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김연태(한국건설기술인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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