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산책, 저자 김연태(金年泰)

'난향천리'란 난초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천리까지 퍼진다는 말이다. 얼마나 깊은 향을 품고 있으면 그럴 수 있을까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난향이 퍼지는 것을 이백은 그의 시에서 향풍(香風)이라고 했다. 난향은 강하거나 요염하지 않고 조용하며 부드러워, 때론 난초 꽃 옆에서도 손바닥으로 풍기는 자신의 코 쪽으로 바람을 일으켜야 향기를 느낄 때도 있다. 난초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바람이 일면 십 리 안의 모든 초목들이 무안한 빛을 띠게 된다고 하였고, 중국에선 향초, 수향, 연미향, 국향, 향조, 제일향, 왕자향 등으로 부르며 난초의 향기를 제일로 치고 있다.

난초는 군자의 충성심과 절개를 뜻하기도 하는데 중국의 전국시대, 비극의 시인인 굴원은 '초사(楚辭)'에서 "나는 이미 난을 구완에 기르고, 추란을 꿰어서 노리개 만들려고, 꽃과 잎이 무성해지기를 기다렸으나, 꽃향기 잡초에 덮여져 슬퍼라."라고 썼다. 이 시를 보고 성삼문은 "대부(굴원)는 난초 수(繡) 놓인 띠를 차고 있네. 난초 하나가 열가지 향기와 맘먹으니 그래서 다시보고 사랑하리라." 난향을 노래했다.

난의 향기를 가지고 지은 시는 뭐니 뭐니 해도 이백의 시가 백미라 할 수 있다.

꽃이 되려거든 난초가 되고,

나무가 되려거든 솔이 되려무나

난초는 그윽하여 향풍이 멀리가고,

솔은 추워도 그 모습 아니 바꾸네

 

조선시대 문인 이식(1458-1489)은 자신의 문집 사우정집에 이러한 난의 향기를 노래했다.

인간 세속에 물드는 걸 부끄럽게 여겨

바위 골짜기 물가에서 살고 있네

교태와 아양 떨 줄 모르지만

그윽한 향기 지녀 덕인을 닮았네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68)선생이 지은 시에도 난의 향기에 관한 뛰어난 서정성이 엿보인다.

"빼어난 가는 잎은 굳은듯 보드랍고

자주 빛 굵은 대공 하얀 꽃 매달고

이슬은 구술이 되어 마디마다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고

깨끗한 모래 틈에뿌리를 서려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받아 사네."

 

이병기 선생은 '고서 몇권과 술 한병, 그리고 난초 두서너 분이면 삼공이 부럽지 않다.' 고 했으니 가히 난을 아는 선비의 마음이라 하겠다.

공자기어에서는 "지초와 난초는 깊은 산속에 자라며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고 하여 군자나 선비에 비유하고 있다.

난초는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칭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사군자그림은 조선후기에 남종문인화가 유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려져 선조의 묵 란, 이징의 묵 란, 조희용의 석란도, 이하응의 묵 란, 민영익의 묵 란 등 주옥같은 작품이 많다. 그들의 그림들을 유심히 보면 시대적 배경이나 개인의 성품까지 잘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추사체와 세한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추사 김정희의 묵란을 잘 그렸는데, 그는 '부작란도'라는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의 이 그림을 스스로 신품(神品)이라고 평하고, '난초를 안 그린 지 스무 해 우연히 그려진 건 천성 때문인가 문을 닫고 깊이 깊이 찾아 갔더니 예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일세' 라는 시를 적었다.

난초는 원래 더운 지방에서 사는 식물이다. 강세황은 우리나라에 본래 난초가 없었으니 일찍이 그린 이가 없다고 기록하였는데, 자연 상태의 난초 서식처를 감안해 보면 우리의 서해바다와 가까운 중국의 동쪽인 저장성 주변에서 씨가 바람에 날려 우리나라의 남서해안에 서식하게 되었고 일본에도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난초는 '난초지초'의 우정으로도 표현되듯 중국에서는 아주 친한 친구가 의형제를 맺게 되면 표지에 금색의 난초그림과 함께 금난보라는 글씨가 쓰인 수첩에다 자신의 이름, 가계도, 생년월일, 출신지 등을 적어 '바다가 마를지라도 우리의 우정은 변치 않는다.'는 맹세를 하고 교환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금난이란 말은 역경(易經)에 나오는 말로 '두 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쇠도 끊을 수 있고, 마음이 같은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라는 뜻으로 평생 변하지 않는 두터운 우정을 상징하는 말이다.

승진이나 영전을 했을 때 난초를 선물하는 이유는 '벽사진경(사악함을 물리고 경사스러움을 불러들임)'과 절개, 고고함을 뜻하여 새로 승진한 자리에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고고함을 지키며 주위에까지 덕화시키기 바란다는 뜻이란다.

무릇 난초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고 하지만, 인성 깊고 따뜻한 마음을 갖은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하니 주변에 이런 따뜻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얻는 것이 오히려 더 깊고 짙은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될 것이다.

 

- 김연태(한국건설기술인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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