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가작-김경만 혼자 걷는 길은 없다 - (산문, 뇌병변,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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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가작-김경만 혼자 걷는 길은 없다 - (산문, 뇌병변, 수필)
  • 최봉혁 기자
  • 승인 2023.01.10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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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가작-김경만 혼자 걷는 길은 없다 - (산문, 뇌병변, 수필) (그림 =강선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가작-김경만 혼자 걷는 길은 없다 - (산문, 뇌병변, 수필) (그림 =강선아)

 

혼자 걷는 길은 없다

김경만

드리워진 커튼 틈 사이로 밝은 기운이 들어온다. 근래 들어 숙면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이 많아서일까. 바람이 거칠게 이는 듯하다. 멀리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이 영상처럼 스쳐 지난다. 꾸부정한 내 모습인 듯하다. 얼굴이 차가워지더니 머리 위로 바람이 닿는다. 한참을 멍하니 열린 창밖을 바라보다 슬며시 자리에서 벗어났다. 왠지 모를 한줄기 서러움이 밀려온다. 이제 어두웠던 거리는 점점 밝아오겠지. 세상은 어제처럼 또다시 바삐 돌아갈 터이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가고 있을 터이지….

일찍 잠이 들었다가 이르게 눈을 떴다. 동쪽 창이 희미한 하늘빛으로 바뀌며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연다. 경이롭다. 햇살과 바람이 운무를 걷어내고 아침을 여는 하늘은 아름답게 피어나겠지. 무슨 꿈을 꾸는지 아직도 아내는 희미한 웃음 머금은 채 잠들어 있다.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보니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참 고왔었는데….

무던히도 고생을 시켰지….

아직도 날 사랑할까….

한때는 힘들어하는 모습에 훌훌 자유롭게 놓아주고도 싶었는데….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어느덧 서른두 해가 되었다. 고왔던 아내가 황토벽과 질그릇처럼 투박하다. 참으로 마음고생이 깊었을 것이다. 회사 업무 중 젊은 나이에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으니….

장애 3급, 지금도 그때 뇌졸중 후유증으로 왼편은 엄동설한이고 그나마 절반은 늦가을인 남편이다. 첫아이 돌 지날 무렵, 건강을 잃고 중도 장애를 지니게 되었으니 그이 삶을 말해 무엇 하랴. 그래서인지 그녀는 이제 투명함보다 속 깊은 사람으로 변해있다. 우리 부부를 아는 사람은 모두 아내를 칭찬한다. 고충의 시간을 알기에 그러하다. 저 사람은 아내로서 필요한 세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인내와 두뇌 그리고 아름다움이다. 그중에도 으뜸은 인내일 것이라 여긴다.

결혼이란 나를 버리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길고 긴 여정인 것 같다. 부부의 만남은 인연 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연이라고들 말한다. 그래도 일생 함께하려면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주고받으며 꽃과 나비처럼 상처 흔적 없이 공생해야 하는데 우리 부부는 너무 일방적이다. 부부는 꽃과 나비 관계라 하였으니 정신이든 물질이든 주고받음이 없다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머문다. 꽃향기이거나 꽃가루이거나 그 무엇이든 아내에게 주기 위해 노력하리라 다짐하곤 한다. 어느 날 친구와 마주한 자리에서 아내를 위로하는 마음을 내비치던 말이 생각난다. 아내에게 정말 잘해야 한다고.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섭섭하면서도 친구가 고마웠다. 아마도 그놈의 미운 정 때문에 못난 남편과 함께하겠지….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부가된 슬픔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아내 슬픔은 내 그것보다 더 크고 무거웠으리라. 하물며 자괴감에 시달리며 가시처럼 뾰족하고 거친 말로 아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였을 터이니 말해 무엇 할까. 근래 들어 힘겨움에 가끔 짜증도 부리고, 짧은 일상탈출을 요구하기도 하는 아내가 가여워진다. 아내 안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이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사랑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느낌이고 배려이며 관심이니까 내 아내 안에는 분명히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물질이나 명성보다도 사랑을 더욱 원한다. 행복을 찾아 나서는 모든 여정은 결국 사랑을 찾는 길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리라. 신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라고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알게 하는 능력은 뺏고 사랑을 주지 않았는가.

몇 해 전,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아내와 아들과 함께 떠났던 보름간 동유럽 여행을 회상하곤 추억 속에 머문다. 부부는 꽃과 나비여야 한다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그녀에게 내가 건넨 꽃가루로 기억되었기를 바라게 된다. 아내와 첫 해외여행이라 기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되었던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 틀림없다. 두려움을 벗고 설렘으로 마음의 날개를 달았었다. 오로라를 꿈꾸었던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역사 숨결이 깃든 오스트리아 빈에서 머물다 알프스가 빗어낸 비경을 지닌 할슈타트와 모차르트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재야와 새해를 맞고 야경이 아름다운 헝가리 부다페스트 거리를 걸으며 영혼마저 빼앗겼으며 동화 마을 체스키 프롬로프에서 온통 주황빛으로 르네상스를 즐기다 동유럽 중심지인 체코 프라하에서 여러 날 즐거움으로 머물렀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경이로움은 우리에게 벅찬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느리고 가난한 내 몸은 자유를 만끽한 날들이었다.

여행이 좋은 것은 구경이 전부가 아니다. 2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섰을 때는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러 이야기와 많은 추억이 가슴에 담겼다. 여행 내내 아내 얼굴에 번져가던 미소를 다시 떠올리니 기쁜 마음이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의 삶을 살더라도 문득 그때 생각을 하면서 지금처럼 혼자 미소 짓고 있다면, 그동안의 고정된 생각과 편견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삶은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다. 추억이라 이름 짓는 모든 것도 그 끝에 이르러봐야 소중함을 절감할 수 있다. 비록 유리그릇 같은 삶이지만 남은 시간 정성으로 함께 하리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린 여인 초상화처럼 목이 가늘고 긴 유리 화병에 말린 안개꽃이 꽂혀 식탁에 놓여 있다. 얼마나 착하고 깨끗하게 살았으면 살았을 때와 죽어 말랐을 때가 다르지 않을까. 텅 빈 마음이 되지 않게 해주는 안개꽃을 그래서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줘도 되는 아늑함이 집안 가득하다. 봄날 향긋한 냉이 향 닮은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우리끼리만 오래도록 누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평화로움일 것이고 작지만 단단한 행복이 머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냉수를 찾느라 냉장고 문을 여니 사다 놓은 콩나물이 눈에 들어왔다. 콩나물은 정성이 담긴 물만으로도 튼튼하게 자란다. 탈레스의 주장대로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 그런가. 안방 가장자리에 시루를 걸치고 콩나물을 키워 식구들 반찬으로 활용하던 어머니가 스쳤다. 어머닌 하루에 대여섯 번 많게는 열 번도 더 물을 주었다. 어머닌 나에게도 생각날 때마다 물을 주라 하였다. 어린 나는 시루에 물을 부으면 이내 다 빠져나가는 것을 왜 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그 물기로 자란 콩은 어느새 훌쩍 키가 커 있다. 바르거라, 참되거라 끝없이 일러주던 어머니 그 가르침이 무의미하게 흘러 지난 것이 아니라 콩나물시루에 준 물이 튼튼한 콩나물이 되듯 나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 틀림없으리라.

한참을 냉장고 앞에서 머뭇거리다 아침 상차림에 놓여 있을 시원한 국물을 떠올렸다. 하나를 집어 콩나물 모자를 벗기니 머리가 둘로 벌어진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이 사랑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한결같은 사랑은 아마도 두 개 방에서 나올 듯한데, 하나는 배려와 관심이 가득한 사랑방이고 조금 더 큰 방에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운명이란 생각에서 나오는 체념 섞인 미운 정이 가득한 방이리라 여겨진다. 아마도 후자가 그이 삶을 이끌 것이다. 이 고운 정, 미운 정이 하나로 합치는 데는 신이 건네준 두 아들이 단단한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다. 두 아이가 조화롭게 자라면서 갖가지 정으로 우릴 묶고 있으니까.

행복한 가정의 행복한 모습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불행한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라 하였다. 한 가정이라는 동그라미가 아무 일 없이 목적지까지 가면 좋겠지만 어디 삶이란 것이 그런가. 이가 빠지고 모가 생기고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굴러간다. 이 생채기가 인생사며 사는 맛 아니겠는가? 온전한 동그라미는 주위와 이웃을 보고 느낄 겨를이 없지만, 이 빠지고 모난 동그라미는 느리게 굴러가기에 주위 모든 것과 관계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기어이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함이고 가치 있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며 꿈을 이루기 위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이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임을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하리라. 살아있는 것이 사랑이며 가장 큰 승리이다.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내 가정 버팀목이면서 지지대인 이 여인과 온갖 정 나누며 정성으로 살아가리라.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먼저 간 아버지들과 다른 게 있다면 힘겨워도 아직 아내와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여 느림으로 더불어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내 삶의 의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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