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와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
제1편. ‘신한촌 기념탑’ 제막식에 초청을 받다
1.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짐은 어인 까닭인가?
정작 오늘은 2023년 2월 17일(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오래도록 기억되는 뜻깊은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지금부터 24년 전인 1999년 8월 15일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이하 ‘연구소’)가 주관하여 러시아의 연해주(沿海州), 즉 프리모르스키(Primorskii)의 중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에서 거행된, 이른바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하 ’기념탑‘)’ 제막식에 초청을 받아 참여했던 일도 포함 되어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바로 그 기념탑 제막식에 참여했던 행적이 유난히 더더욱 뚜렷하게 떠오르고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짐은 어인 까닭인가. 한마디로 1989년 6월 1일 연구소를 창설하고 엄청난 열정과 추진력을 발휘하여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빛나는 성과를 이룩한, 연헌(燕軒) 이윤기(李潤基,1932~) 소장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애국애족(愛國愛族) 정신이 내 가슴에 그대로 와 닿고 있기 때문이리라! 난 정녕 그리 여겨 이 글을 쓴다.
아무튼 내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홈실(椧谷) 마을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인 이윤기 소장(이하 ‘이 소장’)을 처음 뵙게 된 것은, 그분이 1989년 연구소를 설립하고 5년 남짓의 기간이 경과한, 1995년 가을 어느 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 사무실에서였다. 그 기간 동안 연구소는 한민족 동질성 회복사업과 민족사 복원연구 및 국제학술회의 개최 등 참으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수필가, 일초(一草) 박 삼 옥(朴 三 玉)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중·고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국민대 산업재산권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 경북고 1학년 때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대구2·28학생의거에 참여하였고, 1964년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 때 한일 굴욕회담 반대 3·24 시위인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식”에서 선언문을 낭독하여 투옥 되는 등 ’6·3민주화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공군사병으로 복무하고 대한교과서(주) 업무부장, 제11대 국회의원 입후보(대구 남·수성구 : 무소속), ‘88서울패럴림픽대회 사업지원처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상무이사, (주)한국스포츠TV(현 SBS Sports) 대표이사 사장, 민주평통자문위원(제9기), 창원경륜공단 이사장(1,2,3대), (사)한국자전거문화포럼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수필가로서 (사)국제문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체육포장, 지방공기업경영대상(제6회),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제9181호), 6·3동지회 및 6·3공로자회 자문위원, 국제문예 수필부문 등단. 사람은 자질보다 노력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처럼 “서(三)말의 구슬(玉)도 꿰어야 보배”를 좌우명으로 살아왔다. 저서로는 ◾자전거‘살림길’이야기(전 5권) ◾쪽빛자전거! 대한민국! GO! GO! GO!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